[축지법 인생 ①] “대학 가느니 9급 공무원”…공시학원가 고교생 점령
-노량진 공시 학원가 가보니 고교생들 우글우글, 공시학원 세대교체
-‘대학생’ 대신 ‘공시생’…대학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느니 공시 준비
-고교과목 평가에 추가돼 진입장벽 낮아져, 대졸은 7급으로 상향도전
노량진 공시 학원가가 젊어지고 있다. 20대 중반의 대학 졸업생들이 중심이 됐던 노
량진 학원가에 최근 재수생과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오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진 것이다.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의 평가 과목이 바뀌면서 문턱이
낮아졌고, 대학보다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는 고등학생까지 생기면서 학원가도 변화
하고 있다. 취업하기 어렵고, 취직한다고 해도 경기불황으로 회사들이 어렵다보니
안전성이 높은 공무원 신분이 인기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엔
아예 고고생까지 이 대열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9일 치러진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에서 총 3156명의 고등학생 지원자가 응시
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46% 증가한 수치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임모(25) 씨는 아직까지 대학교 휴학생 신
분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바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
무원 시험 준비기간이 최대 3년 가까이 된다는 소리에 1학년을 마치자마자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는 굳이 대학교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
해 계속 휴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휴학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임 씨는 “지금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 중에 상당수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대학교 다니느라 1년을 허비한 것 같다”
고 말했다.
임 씨처럼 대학교 졸업장보다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 심
지어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9일 행정자치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치러진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에는 총
16만3791명이 시험에 응시했다. 이 중 18~19세 지원자는 총 3156명이었다. 전체 지
원자의 1.9%에 달한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이 연령대는 2015
년에는 2160명이었는데, 1년 사이에 46% 증가한 것이다.
특히 지난 2013년부터 9급 공무원시험 평가과목에 수학ㆍ과학ㆍ사회 과목이 추가되
면서 고등학생 준비생들의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 이전까지 필수 평가과목이었던 행
정법 총론과 행정학 개론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추가됐다. 학교 수업과 중복되는 과목만으로도 9급 공무원 시험을 칠 수 있게 되자
고등학교 재학생 중에서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이다.
노량진 학원가도 이에 따라 고등학생 지원자를 위한 설명회를 여는 등 젊은 준비생
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한 공무원 시험 학원 관계자는 “3년 전부터 고
등학생과 재수생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있다”며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시험 경쟁
률이 높아 시험 준비기간이 늘어나면서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기존에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수험생 중에는 7급 공무원 시험으로
옮겨간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목 보다는 기존에 공부했던 전문 과목을 선택하
는 것이다. 노량진에서 7급 교정직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성모(30) 씨는 “원래 9급
을 준비했는데 난이도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법을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
는 7급 시험으로 옮겼다”며 “고등학생 등 경쟁률이 너무 높아져 7급 시험을 치는 것
이 오히려 합격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취업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하는 현실에
서의 고민이 고등학생들을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졸자들의 어려운 취업 현실이 고등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며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한 불신과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고등학생
들이 빠르게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출처] 헤럴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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