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고시학원에 부는 ‘공딩’ 바람
“대학 나와 봐야 취업도 안 돼요”
대학 생활 효용성에 의문…일찍 뛰어드는 전략적·현실적 선택
공딩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전문가 “계획·목표 확실해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인 ‘공딩족’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대
형 고시학원에서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들은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
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남들보다 먼저 시험에 뛰어
들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다. 또 공무원 고
유의 직업 안정성에 학력을 따지지 않는 시험 응시 시스템도 강점이다. [일요서울]
은 공딩족이 증가하는 세태에 대해 들여다봤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을 준비해왔다는 이예진(19)양은 현재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
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 양은 수능 시험도 응시하지 않았다. 남들이 대학입학시험을
볼 동안 이 양은 운전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운전면허가 경찰 시험의 필수조건이어서
다.
지난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한 이 양은 하루 5시간 남짓 자며 ‘열공’하고 있
다. 이 양에게 대학 생활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양은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힘든 게 사실 아닌가”라며 “주변 친구들이 대학 가서 흥청망청 노
는 걸 보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창 친구들과 놀 나이지만 미래를 위
해 현재의 즐거움을 잠시 유예한 것이다. 이 양은 “솔직히 부러울 때가 많다. 저는 친
구들이 불러도 나갈 수 없고. 대학 MT도 가보고 싶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맘 편히 놀겠다”고 했다.
이 양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나중에라도 대학 진학을 할 계획을 세웠다. 여
전히 대학 졸업장을 중시하는 한국의 학벌 문화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에 따른 것이
다. 자식 걱정도 한다. 이 양은 “나중에 자식이 커서 부모 학력 기재란에 뭐라도 적
을 수 있도록 야간 대학이라도 가려고 한다”며 미래를 이야기했다.
공무원의 직업 안정성은 고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양은 “주위를 보면 직장 생활하다가 해고를 당해서 돈벌이 걱정을 하
는 경우도 많은데 공무원은 해고 위험도 별로 없고 정년이 보장돼서 좋은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학 진학 대신 일찌감치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이 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 4월 치른 국가직 9급 공채에 무려 22만1853
명이 지원했다. 이 중 18∼19세 지원자는 총 1955명으로 지난해 1387명보다 40%나
증가했다.
대형 고시학원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공무원 시험 전문기
업 박문각 관계자는 “과거보다 확실히 많이 늘었다”며 “100명 중 5~10명 정도는 어
린 학생들”이라고 밝혔다. 공무원학원 에듀윌에 따르면 이 학원 9급 공무원 온라인
강의를 듣는 고3(재수생 포함) 비율은 2014년 5.3%에서 지난해 25.3%로 급증했다.
이예진 양도 “2014년 8월쯤 (다른) 학원 다닐 때만 해도 고등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
었는데, 2016년 초 졸업할 때는 고 1~2학년 학생들이 5명씩 무리 지어 공부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적어진’ 기회 ‘현실적’ 변화
올해 3분기 기준 4년제 대졸 이상 실업자 수는 31만5000만 명으로 사상 최대다. 전
체 실업자 98만5000명 중 32%를 차지한다. 실업자 3명 중 1명은 대졸이라는 얘기다.
이런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이들은 ‘대학 스펙’이 더는 취업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
한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써야 할 비용과 시간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올 2
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은숙(19)양은 “대학 졸업
해 봐야 취업도 안 되고 다들 공무원 시험 준비하니까 차라리 그 대학 등록금으로 미
리 시험을 준비하면 남들보다 빨리 취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무원은 최종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만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게다가 국어·영어·국사 등 고등학교 때 배운 과목이 공무원 시험
의 일부 과목과도 연결이 되는 등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공딩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
철우씨는 “사실 4년 동안 자신과 적성에 맞지 않은 학과를 선택해서 시간 낭비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런 친구들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서 준비하는 친구들이 훨씬 현
명한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최진우 군도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는 말은 정말 많이 들었다”며 “시험에 학생들이 몰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공딩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현준(38)씨는 “사회
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면서 “극심한 취업난 속에 학생들이 꿈보다
는 어쩔 수 없이 안정적인 공무원에 몰리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강현태(32)씨는
“이런 현실에서 청년들이 취업 불안감을 덜 수 있게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된다”
며 “청년들이 도전하고 실패도 하는 사회가 돼 공무원뿐 아니라 창업도 하고 과학자
도 나오는 다양성의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해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도 표했다. 대형고시학원 관계자는
“일찍 공부를 시작하면 앞서가는 면도 있지만 섣부른 선택은 금물”이라며 “공무원
수험 생활이 대학 입시보다 더 힘들 수 있음을 잊지 말고 구체적인 계획과 확실한 목
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출처] 일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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